검색결과
'Monday Night Group'에 대한 통합 검색 결과 : 전체 15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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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사료 144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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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요모임(Monday Night Group)에서 작성한 서울문리대 시위사건(197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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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번호 : 00471680
날짜 : 1973.10.02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Jones, Linda Huffman
요약설명 : 월요모임(Monday Night Group)에서 정리한 서울문리대 시위사건(1973.10.2)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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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요모임(Monday Night Group)에서 영역한 서울법대 시위사건(197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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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번호 : 00471686
날짜 : 1973.10.04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Jones, Linda Huffman
요약설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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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요모임(Monday Night Group)의 린다 존스(Linda Jones)가 B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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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번호 : 00471694
날짜 : 1973.10.10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Jones, Linda Huffman
요약설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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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사료 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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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료 컬렉션 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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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계피복노조 노동교실 탄압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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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설명 : : 528466), 린다 존스 여사가 기증한 Monday Night Group(월요모임)의 <[Fact Sheet 38]The Peace Market>(등록번호 : 512013), 한국문제일본기독교긴급회의가 기증한 평화시장 노동자를 비롯한 6백만 노동자 일동 명의의 <6白ち勞動者の母 李ソスン女史を釋放せよ> (등록번호 : 59961), 사회선교협의회의 <평화시장 이야기> (등록번호 : 94680), 근로자대표(청계피복지부), 한국사회선교협의회 명의의 <전태일 어머니(이소선)은 왜 연행 되었는가?> (등록번호 : 419719), <민중의 소리 작가 장기표씨 긴급조치위반 반공법위반 등 항소심 공판기록> (등록번호 : 120439), 장기표 최후진술 <1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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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ㆍ2시위~전국 각 대학 동맹휴학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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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설명 : 각 대학의 성명서(등록번호 : 100826외), 선언문(등록번호 : 126060외) 등과 구속학생대책위원회(등록번호 : 480391), 기독학생회 등의 성명서, 사건경위서(등록번호 : 89691외) 등의 사료가 소장되어 있다. 특히 유신체제에 첫 반기를 든 사건이자 각 대학의 연이은 시위와 동맹휴학 사건의 시발점이 된 1973년 10월 2일 서울대 문리대의 <선언문[정보파쇼통치 중지, 자유민주체제 확립, 국민의 생존권 보장, 김대중 사건의 진상 규명, 정치인과 언론인의 각성]>(등록번호 : 113729)을 찾아볼 수 있다. 또한 서울대 10.2 데모 등을 영역하여 외국에 알린 월요모임(Monday Night Group)의 사료들(등록번호 : 471680외)도 주목할 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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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료 콘텐츠 3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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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0년 5월 광주를 기록한 월요모임의 사실보고서(Fact Sheet) #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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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설명 : 바로 월요모임(Monday Night Group)이었다. 월요모임은 한국에 거주하고 있던 다양한 국적의 외국인들이 모여 한국의 상황을 알리고 도움을 청하기 위해 만들었다. 이들은 정기적으로 모여 사실보고서(팩트 시트, Fact Sheet)를 작성했다. 사실보고서는 월요모임의 구성원들이 미 대사관 관계자, 정부기관의 관계자, 혹은 외신기자들에게 수집한 한국에 대한 정보, 해외통신 및 저널 그리고 한국에서 발행한 성명서, 유인물, 사건 당사자나 구속자 가족들을 통해 들은 이야기들을 수집하여 작성하였다. 이렇게 작성된 보고서는 필요에 따라 한국에서 발행된 성명서, 탄원서 호소문과 신문기사를 번역하여 함께 묶음으로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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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대를 지킨 푸른 눈의 양심들, 월요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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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설명 : 위해 투쟁하고 헌신한 외국인들이 있었다. 그들은 월요모임(Monday Night Group)의 회원들이었다. 월요모임은 원래 1968년 2월 박정희 대통령 취임 축하 차 방한한 험프리 미 부통령을 만나서 한국에서 벌어지는 인권탄압을 비롯한 일들에 대해 설명하기 위해 장로교 선교사 허버트 화이트 (Herbert White)가 주도해 만든 그룹인 50인위원회(또는 50인모임)로 시작되었다. 그런데 한국의 독재 상황이 점차 심각해지면서 이들의 모임도 잦아지고 정례화 되었다. 매주 월요일 밤마다 개신교와 가톨릭 선교사들의 집에서 번갈아가며 모임을 가졌는데 보통 8명에서 10명 정도가, 어떨 땐 20명까지 모였다. 가톨릭 교도와 다양한 교파에 소속되어 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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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빅토리숄을 아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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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설명 : 국내는 물론 해외에까지 팔려나갔다. 한국에 선교사로 와서 민주화운동을 지원을 하고 있던 월요모임(Monday Night Group) 회원들이 해외에도 팔 것을 제안했다. 미국 군사우편을 이용할 수 있었던 그들은 해외 운반책의 역할까지 맡아주었다. 빅토리숄이 해외에까지 나가 잘 팔리게 되자 박정희 정권은 구속자 가족들이 보라색실을 구하지 못하게 하려고 뜨개실 상인들에게 보라색 실을 팔지 못하게 했다. 조사관을 시장에 보내 판매 감시를 했다. 그러나 실가게 주인들은 조사관들이 지나갈 때는 실을 감추었다가 실을 사러오는 아내들에게 몰래 팔았다. 숄 판매로 조성된 기금은 민주화운동을 지원하거나 면회할 사람들이 없는 구속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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